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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시간표’를 가져온 선교사

by 틈틈이 연구원 2025. 8. 6.

“조선의 청소년을 깨우다 – 아펜젤러, 복음으로 꿈을 심다”
– 배재학당의 시작, 한국 청년 교육의 뿌리를 만든 선교사


1. 부활절 아침, 조선에 발을 디딘 두 명의 선교사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두 명의 서양 선교사가 같은 배를 타고 조선 땅에 도착합니다. 한 명은 의사였던 스크랜턴, 또 한 명은 목 사이자 교육자였던 아펜젤러. 당시 조선은 기독교를 허용하지 않았고, 복음은 아직 씨앗조차 뿌려지지 않은 땅이었죠. 하지만 그는 편지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도 젊은이를 향한 뜻이 있으십니다.
나는 복음과 함께 교육의 빛을 전하고 싶습니다.”


2. 아펜젤러는 누구였나?

  • 미국 감리교 선교사
  • 원래는 목회자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조선에 오게 됨
  • 그의 사명: 조선의 청년을 복음과 지식으로 일으키는 것

📍그가 가장 먼저 한 일:
👉 배재학당(Paichai School) 설립
조선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으로, 훗날 배재대학교의 뿌리가 되었어요.


3. 왜 교육이었을까?

당시 조선의 청년들은 신분제, 무지, 그리고 정치적 억압 속에 미래를 꿈꾸기 어려웠습니다. 아펜젤러는 그들을 보며 예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 마가복음 6:34
“예수께서 나아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으므로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그는 단순한 ‘공부’를 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교육을 원했습니다.


4. 성경과 영어, 자유와 진리를 가르치다

배재학당에서는
📌 성경
📌 영어
📌 세계지리
📌 산수
📌 문법 등을 가르쳤어요.

하지만 수업의 중심은 언제나 성경이었습니다. 그는 ‘말씀 없는 교육은 껍데기’라 믿었어요.

 

📝 대표적인 가르침:

“참된 자유는 진리 안에서 옵니다.
청년들이 진리를 사랑할 때 조선은 일어납니다.”


5. 아펜젤러가 남긴 것들

그는 불과 13년의 사역 후, 1902년 강화도 해협에서 배 사고로 순직했습니다. (배가 충돌한 뒤 침몰하자, 구조될 기회를 양보하고 아이들과 여성들을 먼저 대피시킨 후 생을 마감) 하지만 그가 남긴 건 너무도 많았죠.

🔹 배재학당 → 배재대학교
🔹 조선 최초의 복음 전도 학교
🔹 청년 리더 양성의 시작
🔹 성경 보급, 문맹 퇴치, 사회 개혁 의식 고취


6. 오늘의 적용 – 나도 ‘빛을 심는 사람’일 수 있다면

아펜젤러는 조선에 온 첫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해요.

“하나님, 이 땅에 복음의 빛을 심게 해주소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가정, 직장, 교회, SNS… 그곳이 바로 내가 빛을 심을 수 있는 ‘조선’ 아닐까요?

 

📖 마태복음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아펜젤러에 대한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화


1. 성경책 숨기고 입국?

당시 조선은 기독교를 '서양 미신'으로 간주하고 공식 전도를 금지했어요.

 

👀 그런데 아펜젤러는 성경책을 들고 조선에 들어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교과서'나 '언어 교재'처럼 포장해서 세관을 통과했어요.

🔍 당시 기록에 따르면, “영어 독해 교재로 위장한 신약 성경”이 다수 있었답니다!

 

👉 “하나님의 말씀, 조선 땅 첫 입성은 영어 교재 행세?”
👉 “숨겨진 복음 – 그들이 성경을 들여온 방법”


2. 배재학당, 첫 수업에 온 학생이 몇 명이었을까?

정답: 1명!

1886년 6월, 배재학당의 첫 개강 날. 아펜젤러는 책상을 정리하고 기도하며 학생을 기다렸는데… 딱 1명 왔습니다. 그 학생이 바로 훗날 교육자이자 감리교 지도자가 되는 김정식. 😲 그런데 놀라운 건, 아펜젤러는 그 1명을 위해 예배, 수업, 기도를 그대로 진행했다는 것!

마치 100명 앞에서 하듯 진지하게요.

📖 마태복음 18:12
“그 중 하나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을 산에 두고 가서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 “한 명의 학생, 그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
👉 “100명이 없어도, 그는 시작했다”


3. 길거리에서 만난 조선 청년에게 영어로 복음을?

아펜젤러는 조선말을 익히기 전까지, 길에서 영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조선 청년을 보면 말을 걸었습니다.
가령:

“Do you speak English?”
“Jesus loves you.”

 

그는 젊은이와 짧게라도 대화가 되면, 작은 복음 소책자를 건네주곤 했습니다.이런 방식으로 전해진 복음으로 후에 예수 믿게 된 청년도 있었다고 기록돼 있어요.

 

👉 “그는 말을 몰랐지만, 사랑은 통했다”
👉 “Do you speak Jesus?”


4. 배를 양보하고 죽음을 맞이한 선교사

1902년,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던 중, 그가 탄 기선이 충돌 사고를 당했습니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 아펜젤러는 먼저 구조될 수 있었지만, 자신보다 약자들(여성, 아이, 한국인 통역자 등)을 먼저 태우고 자신은 배에 남았다는 증언이 있어요.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예수님의 희생을 연상시키며 지금까지도 회자됩니다.

📖 요한복음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구명 보트를 양보한 선교사, 복음으로 떠나다”
👉 “끝까지 남았던 사람, 아펜젤러의 마지막 이야기”


5. 서울에 “시간표 문화”를 처음 도입한 사람?

당시 조선은 “정해진 시간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문화”가 거의 없었는데,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에서 종(鐘)을 쳐가며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운영했어요. 이후 학생들이 종 치는 소리만 들어도 움직이는 습관이 생겼고, 이게 퍼져나가 서울 최초의 "시간 중심 교육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해요! 

👉 “조선에 ‘시간표’를 가져온 선교사?”
👉 “그의 종소리가 오늘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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